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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사진이 갤러리로 들어왔다!
2011.03.22
패션 사진이 갤러리로 들어왔다!


◇ 10 꼬르소 꼬모 서울 오픈 3주년 기념 초청 사진전 개최
◇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 '파울로 로베르시' 최초 방한
◇ 현실과 꿈 사이, 패션과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작품 전시









□ 아시아 대표 라이프스타일 컨셉트 스토어 10 꼬르소 꼬모 서울(10 CORSO COMO SEOUL)이 오픈 3주년을 기념하여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 '파울로 로베르시(Paolo Roversi)'의 사진전을 오는 5월 8일까지 10 꼬르소 꼬모 서울 10층에서 선보인다.
□ 파울로 로베르시는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피터 린드버그 (Peter Lindbergh)와 함께 현존하는 세계 3대 패션 포토그래퍼로 불려진다. 194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1973년부터 지금까지 파리에 머물며 스튜디오 작업을 위주로 진행해왔다. 세계적인 영화배우 이자벨 아자니, 모니카 벨루치, 까뜨린느 드뇌브, 니콜 키드만과 한국 배우로는 김희선, 송혜교와 작업한바 있는 그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최초.

□ 이번 전시는 누디(Nudi), 리브레또(Libretto), 스튜디오(Studio)의 세 가지 컨셉트로 구성된다. 각각 동일한 이름의 사진집으로 출간된 바 있지만, 세 책에 포함된 작품을 처음으로 한 자리에 전시하여 그의 사진 세계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다.
누디(Nudi)는 파울로 로베르시의 누드 시리즈에 대한 소개로 순수하게 빛나는 인체의 아름다움과 그 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로틱한 에너지를 감각적으로 보여 준다. 세계적인 패션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Natalia Vodianova)의 사진이 대표적.
리브레또(Libretto)를 통해서는 파울로 로베르시가 표현하는 패션과 정물, 그리고 누드의 환상적인 결합을 경험할 수 있다. 빛과 그림자, 색채와 형태의 조화가 빚어 내는 이미지는 마치 동화에서 본 것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튜디오(Studio)는 파울로 로베르시가 가장 큰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는 '스튜디오 포트레이트(Studio Portrait)'분야에 대한 20년 세월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8X10 인치 대형 폴라로이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폴라로이드 필름이 틀에 제대로 밀착되기 전에 막을 제거해 마치 이미지가 바랜 듯한 느낌을 준다. 또 그는 근거리에서 장노출을 설정하는 기법을 활용하여 인물을 의도적으로 초점이 흐리게 촬영한다. 이러한 그의 사진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어 '현실과 꿈의 사이'를 회화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패션잡지를 떠나 갤러리로 들어온 그의 사진이 예술 작품으로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 Paolo Roversi, Biography
1947년 이탈리아 동북부 도시 라벤나(Ravenna)에서 태어난 파울로 로베르시. 사진을 향한 그의 열정은 1964년, 10대 시절 가족들과 떠난 스페인 휴가에서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지하실에 암실을 만들어, 자신만의 흑백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데 몰두했다.
1970년, 그는 연합통신사(the Associated Press)와 함께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AP통신이 파울로에게 맡긴 첫 번째 임무는 베니스에 파견해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의 장례식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파울로는 라벤나에 그의 첫 번째 포트레이트 스튜디오를 열었다. 1971년, 그는 엘르(Elle) 매거진의 전설적인 아트 디렉터 피터 크냅(Peter Knapp)을 우연히 만났다. 이렇듯 우연한 인연으로 시작된 크냅의 초청으로, 1973년 11월 파울로는 드디어 파리에 입성했고 지금까지도 그곳에 머물고 있다.
파리로 이주한 후, 파울로는 리포터로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을 통해 조금씩 패션 사진에 다가가고 있었다.
1974년, 영국 사진작가 로렌스 사크만(Lawrence Sackmann)은 파울로를 그의 어시스턴트로 발탁했다. “사크만은 몹시 까다로웠다. 대부분의 어시스턴트는 고작 일주일 밖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전문 포토그래퍼가 되기 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사크만은 창의성을 강조했다. 그는 같은 카메라와 플래시 상태라 할지라도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촬영을 준비함에 있어서는 거의 군대처럼 엄격했다. 그렇지만 그는 ‘너의 삼각대와 카메라는 반듯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지만, 너의 눈과 마음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큰 가르침을 주었다. 파울로는 사크만 밑에서 9개월을 견뎌냈고, 그 후 엘르(Elle)나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등 여러 잡지에서 작은 일들을 맡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첫 번째 주요 패션 화보가 마리 끌레르(Marie Claire)를 통해 소개되었다. 1980년, 파올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8×10인치 폴라로이드 포맷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화장품 광고를 통해 세상에 더욱 알려졌다. 파울로는 항상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이는 단지 그가 사용하는 큰 카메라 때문만은 아니었다. 1981년, 그가 현재까지 작업하고 있는 폴 포르트가 9번지(9 rue Paul Fort)에 스튜디오를 마련할 때까지, 그는 세느 강의 좌안에 위치한, 그가 소유한 여러 개 아파트의 방 하나를 스튜디오로 사용하곤 했다.
1980년대 중반 패션계는 카탈로그 제작에 매우 열중해 있었고, 사진가들은 지극히 독창적이고 주관적인 작품을 카탈로그에 표현할 수 있었다.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로메오 질리(Romeo Gigli) 등은 파울로에게 그 기회를 주었다.
그 후, 인도, 예멘 등을 여행하며 파울로는 많은 인물 사진을 찍었다. 그의 책 안젤리(ANGELI)와 알 무칼라(Al Moukalla)에서 그 인물 사진의 일부를 엿볼 수 있으며, 그는 인도에 관한 책도 준비 중이다. 파울로는 또한 광고도 조금씩 제작해 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작품은 여러 전시와 책의 주제가 되었고, 또 많은 상까지 수상했다. 오늘날까지 여전히, 파울로는 최고의 패션 잡지 및 디자이너들과 정기적인 합작을 해오고 있다.